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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2년 제7기 명장 수여식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자 2022-09-27
조회수 138

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 명장 2인 선정

 

 




 

 

 

 



지난 923일 금요일, 문화체육관광부소관 비영리 사단법인 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는 2022년 제7기 한국무형문화유산 명장 수여식을 가졌다.

이날 수여식에서는 회화부문 전통민화 김현수전통민화연구소 김현수대표와 전통건축부문 돌너와 번와장 청림서당의 양인석대표가 최종 심사를 통과하여 명장으로 지정되었다.

()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 이용강 이사장은 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는 현행 문화재 보호법과 무형문화 보존 및 진흥에 관한 법률안을 기본으로 설립되었으며 선조들의 무형문화유산을 개승 발전 시키고자 예기능 보유자를 발굴하여 한국문형문화유산 명인. 명장으로 지정함을 통해 소중한 문화유산을 연구, 보존 및 상호교류확대함으로 무형문화유산 발전에 기여하고 국내외의 관련 기관과 교류 협력을 통하여 문화 창달에 기여하고자 135명의 국가 무형문화재와 지방문형문화재 및 예기능 보유 명인명장들이 힘을 모아 출발한 단체이며 이러한 협회를 통하여 한국 전통문화의 가치관 확립과 선조가 남긴 문화 자산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정보·지식·콘테츠를 제공하여 우리 문화의 뿌리를 확립하고 우리 문화의 세계화에 오늘 명인명장에 임명 되신분들이 큰 역할을 하는 계기가 되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비영리 ()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는 전국 각 지역에 산재된 무형문화 명인·명장의 발굴을 통하여 선조들의 장인정신을 계승하고, 우리민족의 창의성을 전승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각 지역에 관심 있는 분들의 명인.명장 신청과 참여를 바랍니다(043-216-9991)



김현수전통민화연구소 김현수대표





 

 

 

 

 

 

 

 

 

 

전통민화 풍속화는 18세기 후반부터 김홍도와 김득신, 신윤복 같은 화원 화가들에 의해서 감상을 위한 그림으로 유행하게 된다. 또한 단순한 생활의 묘사에서 더 나아가 사회 비판의 메시지도 전하게 된다.

풍속화는 원래 왕실이나 조정에서 열린 행사나 사회 각 층의 생활상과 잡다한 일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그림을 의미한다. 주로 병풍이나 화첩 형태로 그려져 백성들에게 쉽게 유교적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 제작하였다. 이와같이 실용과 교화의 목적이었던 풍속화 화풍은 조선 후기가 되면서 심미성을 더해 문인화와 같은 감상의 대상으로까지 발전되어 진경산수화와 함께 크게 유행하였다

문화들은 풍속화를 선비들의 그림인 문인화의 경지에 미치지 못한 저속한 그림이라 하여 속화라 지칭하였으나, 속인들에게는 시정의 잡사, 양반의 풍류, 경직도, 여색이 담긴 춘의도 등 지칭하는 개념이기도 했다.

 

김현수 명장은 불교대학에서 김익홍교수로부터 탱화를 3년동안 배웠고 김익홍교수님이 돌아가시면서 조계사 법인 스님에게 3년간 탱화를 전수 받았습니다. 불교대학을 졸업한 후 대한민국 민화전승문화재 백당 금광복 선생님에게 민화를 7년 동안 배웠으며 조상들이 물려준 위대한 문화유산인 우리의 전통민화를 널리 보급하고 보존하여 계승발전에 기어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전통민화를 알리기 위해 안성에서 전통민화 연구소를 설립하여 20년 동안 운영하면서 많은 제자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청림서당의 돌너와 번와 명장 양인석대표




 

돌너와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삼국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판같이 얇은 돌로 기와처럼 지붕을 인 건축물을 말하며 점판암이나 얇은 돌을 판형으로 떠서 적당한 크기로 잘라 사용하였다. 지역에 따라서 돌지붕, 돌너와집, 돌집, 돌능애집, 돌능와집, 너새집이라 한다. 돌기와집은 우리나라에서 점판암이 많이 생산되는 강원도 평창, 정선, 충청북도 보은, 영동, 청원지역에서 많이 사용되었으며 한번 시공하면 다른 재료보다 내구성이 훨씬 오래 유지되는 장점과 시공의 용이성, 경제성이 있다.

번와장이란 지붕의 기와를 잇는 장인을 말하며,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기와를 사용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출토유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 시기부터 번와 와공이 시작되어 기와를 만드는 제와 기술자와 와공 또는 와장이라고 하며 벽돌을 만드는 장인이 기와도 만들었기 때문에 와벽장이란 명칭도 사용 되었다. 기와를 올리는 장인은 개장이라고 하는데 이는 제와 장인과 구분하기 위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기와를 만드는 것은 번와(燔瓦)라고 하고 기와를 덮는 일을 번와(翻瓦)라고 하기 때문에 기와 덮는 장인을 번와와공(翻瓦瓦工)이라 한다.
양인석 명장은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전국 각 지역 건축현장에서 20년 정도 활동하였으며 충남 아산시 도고온천 현장에서 처음으로 돌너와 집을 접하면서 관심을 가졌으며 고향인 경남 하동군 청학동으로 귀향하면서 부모님이 물려주신 땅에 청림서당을 설립하면서 교육목적으로 돌너와로된 교육관을 3채를 시공하였습니다. 경남 하동군 인근에서는 돌 너와를 구할 수 없어 강원도 철거 현장에서 돌 너와를 옮겨와 미술관, 박물관, 정자 등을 재건축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돌너와 집은 강원도, 충청북도, 충청남도 일부에만 남아 있고 전통 주거 문화의 하나인 돌너와 집의 전통 번와 기법을 보존 계승하기 위해 한옥 건축 현장과 고건축보수 등 현장경험 20년 동안 많은 선생님들로부터 번와기능을 전수 받았고, 대전에 거주하는 이근복 번와장, 김건홍 문화재수리기능 제 3889(번와공)으로 5년동안 전수 받았고 아들 양태후군이 성인된 후에 본격적으로 번와기술을 전수 할 계획입니다.

 

 

출처 http://kjtoday.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24662